[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미국 메이저리그는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의 양대 리그 체제다. 두 리그의 가장 큰 차이는 지명타자의 유무다. 내셔널 리그에서는 투수가 다른 야수들처럼 타석에 서고,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투수 대신 지명타자를 기용할 수 있다. 아무래도 투수보다는 야수들이 타격에 능숙한 만큼, 지명타자를 기용할 수 있는 경우에는 투수가 타석에 서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콜리세움에서 펼쳐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와의 경기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장면이 연출될 전망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브루스 보치 감독이 지명타자 대신 선발투수 매디슨 범가너를 타석에 세울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두 팀의 경기는 오클랜드의 홈인 콜리세움에서 열린다. 샌프란시스코가 내셔널 리그에 속해있더라도, 아메리칸 리그 소속인 오클랜드의 홈에서 펼쳐지는 경기인 만큼 지명타자를 기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보치 감독은 범가너를 타석에 세우는 모험수를 예고했다. 가장 큰 이유는 우타자 부족이다. 오클랜드는 1일 선발투수로 좌완 딜론 오버턴을 내세울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입장에서는 좌완에 강한 우타자를 지명타자로 기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용법이다. 그러나 현재 샌프란시스코는 많은 선수들이 부상에 시달리고 있어, 지명타자로 기용할만한 우타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가너가 스스로 타석에 서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 범가너는 올 시즌 40타석에 들어서 타율 0.175 2홈런 5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세 시즌으로 범위를 넓히면 183타석에서 9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다. 타율은 낮지만 한 방이 있다. 또한 범가너는 올스타 게임 홈런더비에 출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을 정도로 타격에 적극적인 투수다. 이렇게 여러 상황이 맞물리면서 지명타자 대신 선발투수 범가너가 타석에 서게 됐다.

메이저리그에서 지명타자를 기용할 수 있음에도 선발투수가 의도적으로 타석에 서는 것은 지난 1976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켄 브렛 이후 무려 40년 만이다. 지난 2009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지명타자 대신 투수 앤디 소낸스타인이 타석에 선 경우가 있지만, 이는 탬파베이가 라인업 카드에 실수를 하면서 의도치 않게 벌어진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최근 오타니 쇼헤이가 투타를 겸업하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보치 감독의 승부수가 해피엔딩으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범가너가 타석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이 승부수는 의미가 없다. 또한 범가너가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한, 다른 투수들이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만약 범가너가 조기 강판이라도 된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범가너와 보치 감독의 결정이 1일 경기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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