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이대호(시애틀 매리너스)가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이대호는 14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홈경기에 연장 10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대타로 등장해 극적인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다. 이대호의 홈런에 힘입어 시애틀은 4-2 짜릿한 연장 끝내기 승을 거뒀다.

이대호는 전날 안타를 기록하고도 아담 린드에 밀려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대호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2로 맞선 연장 10회말 2사 1루 상황. 이대호는 린드를 대신해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에는 빠른공을 자랑하는 제이크 디크먼이 있었다. 이대호는 2스트라이크까지 몰렸지만 디크먼의 3구를 공략해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대형 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2호 홈런. 방망이에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는 큰 타구였다.

홈으로 돌아온 이대호는 동료 선수들의 축하를 받으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특히 스캇 서비스 감독과는 포옹을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 MLB.COM에 따르면 이대호의 배트스피드가 103마일(166Km/h)을 기록했으며, 홈런 비거리는 118m에 달했다.

이대호에게는 큰 의미를 갖는 홈런이었다.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던 이대호는 이후 7타석에서 빗맞는 안타 하나에 그치며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들쭉날쭉한 출전 기회가 문제였다. 불규칙하게 경기에 나서다보니 일정한 타격 리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홈런을 통해 보다 많은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약점 공략을 이겨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대호가 담장 밖으로 넘긴 디크먼의 공은 97마일(156Km/h)의 높은 직구였다. 그동안 이대호를 상대하는 팀들은 몸쪽 빠른 직구로 이대호를 공략했다. 메이저리그의 평균 구속이 한국이나 일본보다 빠른 만큼 이대호가 접해보지 못한 몸쪽 빠른 공으로 상대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 또 많은 국제대회에서 입증했듯이 이대호는 빠른공에도 강한 타자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유독 잘 맞은 공들이 수비수 정면을 향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대호 입장에서는 초조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대호는 결정적인 순간, 자신이 빠른공에도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앞으로 자신을 상대할 투수들을 고민에 빠뜨렸다.

한편 이번 홈런은 이대호 뿐만 아니라 소속팀인 시애틀에게도 큰 의미를 갖는 홈런이 됐다. 시애틀은 최근 5연패에 빠지며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최하위로 추락해 있었다. 시즌 초반이지만 반등의 계기를 찾지 못한다면 시즌 전체 구상이 어그러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이대호의 홈런으로 극적인 연장 끝내기 승리를 거두면서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이대호가 시애틀의 복덩이가 된 셈이다.

힘겨운 스프링캠프 경쟁을 거쳐 메이저리그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이대호가 계속해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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