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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영 / 사진=DB |
근거로 제시된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공개된 '국사관논총' 제32집 수록 논문이다. 해당 논문의 15쪽(원문 238쪽)에는 1909년 12월 22일 이완용이 이재명 의사에게 피습된 뒤 한성병원의 학전(鶴田) 의사, 안동병원장 대한병원의 국지(菊池) 원장·고계(高階) 부원장, 전의 박종환, 안상호 등 당시 의사들의 치료를 받아 목숨을 구했다고 적혀 있다.
이어 이재명 의사가 재판에서 밝힌 이완용의 '8가지 죄목'을 소개했다. 여기에는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일, 정미7조약 체결과 군대 해산, 사법권 이양 등이 포함됐다.
특히 논문은 이완용이 피습 이후 신변에 대한 위협을 느끼면서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친일 행보를 이어갔으며, 결국 1910년 한국을 일본에 넘기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서술했다.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 체결 과정까지 이어서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내용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시 확산되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물에는 안상호의 이름과 함께 해당 논문의 관련 대목이 공유됐으며, 게시물에는 수만 건의 조회와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한편 하영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0일 "하영의 증조부는 안상호가 맞다"면서도 온라인상에서 불거진 증조부의 친일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하영은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부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신 후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고 말했다.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1918년 12월 발행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서 다룬 연재 기사에서 "나는 일본사람과 똑같지요. 나는 지금 조선 옷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어요"라고 한 바 있다.
[스포츠투데이 김태형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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