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연프는 가라…SBS, '시한부'와 'AI'로 새로운 사랑을 말하다 [ST이슈]

입력2026년 08월 18일(화) 16:44 최종수정2026년 08월 18일(화) 16:46
내 남은 연애, 기이안 연애 포스터 / 사진=SBS
[스포츠투데이 김태형 기자] SBS가 익숙한 연애 리얼리티의 문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단순히 남녀의 만남과 선택, 경쟁을 반복하는 것에서 '시한부'와 'AI'라는 낯선 소재를 연애라는 익숙한 틀 안에 끌어들이며 연애 예능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최근 SBS가 선보인 '내 남은 연애'와 '나의 AI파트너-기이안 연애'(이하 '기이안 연애')가 그 사례다. '내 남은 연애'는 삶의 유한함을 경험한 청춘들의 사랑을, '기이안 연애'는 인간과 AI 사이의 감정 교류를 다룬다.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 두 프로그램에는 공통점이 있다. '누구와 사귀게 될 것인가'보다 '사람은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라는 질문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점이다.

지난 3일 첫 방송된 '내 남은 연애'는 생사를 오가는 투병 경험을 가진 2030 청춘들이 다시 삶과 사랑을 마주하는 과정을 담았다. 제작진은 기획 단계부터 투병 자체를 자극적인 서사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투병 경험은 출연자를 설명하는 하나의 배경일 뿐, 프로그램의 중심은 그 이후의 삶과 사랑이라는 것이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자신의 투병 경험을 초반에 공유하도록 구성했다. 서로의 상처를 뒤늦게 밝혀 반전처럼 활용하기보다 처음부터 알고 관계를 시작하게 했다. 이를 통해 프로그램은 '투병한 사람들의 연애'라는 자극적인 구도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같은 접근은 방송 이후 성과에서도 나타났다. '내 남은 연애'는 첫 방송 직후 넷플릭스 한국 톱10에 진입했고, 일본 아베마, 대만 프라이데이비디오, 홍콩 뷰 등 해외 플랫폼에서도 서비스가 확정됐다. 기존 연애 예능과 다른 소재가 오히려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어낸 셈이다.
내 남은 연애 / 사진=SBS

SBS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AI를 연애의 상대방으로 끌어들였다. 20일 첫 방송을 앞둔 '기이안 연애'는 기안84와 장도연이 AI 파트너와 직접 데이트하며 감정의 변화를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AI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제작진이 말하는 프로그램의 핵심은 단순한 찬반 실험이 아니다.

AI가 실제 관계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인간은 AI와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주고받게 되는지, 나아가 사랑이라는 감정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연애 리얼리티라는 형식으로 들여다본다.

특히 출연자들이 촬영 중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경험했다는 점은 기존 연애 예능과 다른 지점이다. 기안84는 처음부터 AI의 호의와 감정을 의심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AI의 말투와 방식에 맞춰 변화하는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장도연 역시 처음에는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춰주는 존재를 예상했지만, 예상 밖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인간과 대화하는 것 같은 쌍방향성을 느꼈다고 밝혔다.
기이안 연애 / 사진=SBS

두 프로그램은 소재만 놓고 보면 자극적이다. '투병', 'AI와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그 자체로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SBS가 택한 방식은 자극적인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익숙한 연애 예능의 틀을 빌려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이는 최근 연애 리얼리티 시장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나는 솔로' '환승연애' '솔로지옥' 등으로 대표되는 연애 예능은 출연자들의 관계와 감정선, 선택과 갈등을 중심으로 이미 하나의 공고한 문법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출연자와 새로운 관계가 등장하더라도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누가 누구에게 호감을 느끼는지, 최종적으로 누구를 선택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갈등이 발생하는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이런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단순히 또 다른 남녀의 만남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차별화를 만들기 쉽지 않다. 결국 새로운 것은 '연애'가 아니라 연애를 바라보는 질문이 될 수밖에 없다.

SBS의 두 프로그램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내 남은 연애'가 시간의 유한함이라는 질문을 통해 사랑을 바라봤다면, '기이안 연애'는 인간과 AI의 관계라는 질문을 통해 사랑의 경계를 확장한다. 연애 예능의 외피는 익숙하지만 그 안에서 다루는 관계는 낯설다. 이것이 SBS가 선택한 새로운 전략이다.

물론 새로운 소재가 곧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내 남은 연애'는 투병 경험을 예능적으로 소비한다는 우려를 넘어 출연자들의 삶과 사랑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지가 중요하다. '기이안 연애' 역시 AI와의 관계를 단순한 화제성이나 기괴함으로 소비하지 않고,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하고 그걸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삶의 유한함을 깨달은 뒤 사랑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인간이 아닌 존재와 감정을 주고받는다. 익숙한 연프의 틀을 벗어난 SBS의 새로운 시도가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관계를 사랑이라고 부르게 될까."

[스포츠투데이 김태형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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