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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훈 / 사진=GettyImages 제공 |
일본 매체 TBS는 10일 "하리모토 이사오(장훈의 일본명)가 9일 오후 5시께 도쿄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장훈은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선수다.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3시즌 동안 NPB에서 활약하며 통산 275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 319도루를 남겼다. 특히 3085안타는 은퇴한 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 기록이다.
하지만 장훈의 삶은 숫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일본 야구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스타였지만, 동시에 일본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재일동포이기도 했다.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장훈은 재일동포 2세로 일본에서 성장했다. 일본에서는 하리모토 이사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어린 시절부터 순탄치 않았다. 장훈은 네 살 무렵 사고로 오른손에 큰 화상을 입었다. 오른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붙는 등 심각한 장애가 남았고, 오른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장훈은 왼손잡이로 변신했고 훗날 일본을 대표하는 왼손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다섯 살이던 1945년에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을 직접 경험했다. 자신의 목숨은 건졌지만 이 과정에서 누나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숱한 차별을 겪기도 했다. 장훈은 한국인이라는 신분을 유지한 채 일본 사회의 멸시와 편견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장훈은 야구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고교 졸업 후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데뷔 첫해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프로 3년 차인 1961년에는 타율 0.336으로 생애 첫 타격왕에 올랐다. 특히 1962년에는 타율 0.333 157안타 31홈런 99타점으로 활약하며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장훈은 긴 전성기를 보냈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4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하는 등 통산 7차례 타격왕에 올랐고, 올스타에는 18차례 이름을 올렸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은 데 이어 500홈런, 300도루까지 돌파하며 정확성과 장타력, 주루 능력을 모두 겸비한 타자로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1981년 롯데 오리온스에서 현역 생활을 마친 장훈은 은퇴 후에도 야구계를 떠나지 않았다. 1982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TBS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일본 야구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국 야구와의 인연도 깊었다. 장훈은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특별보좌를 맡는 등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고, 2007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특히 장훈은 고(故) 백인천 전 감독과의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도운 인물이기도 하다.
장훈은 지난달 15일 세상을 떠난 백 전 감독을 추모하며 "백 전 감독은 나보다 세 살 어린 소중한 후배이자 같은 시대를 함께 달려온 동료였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어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백 전 감독을 MBC 청룡에 선수 겸 감독으로 추천했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의 개척자가 될 수 있는 존재였다"고 애도했다.
한편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했던 장훈은 2024년 일본 산케이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몇 년 전 국적을 바꿨다. 현재는 일본 국적"이라고 알리기도 했다.
[스포츠투데이 신서영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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