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보베르데 돌풍부터 정치·인종차별 논란까지…'48개국 시대' 북중미 월드컵이 남긴 장면들 [북중미월드컵결산]

입력2026년 07월 20일(월) 09:00 최종수정2026년 07월 20일(월) 03:56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 / 사진=GettyImages 제공
[스포츠투데이 신서영 기자]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을 끝으로 39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대회는 사상 처음으로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이 공동 개최한 월드컵이자 본선 참가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된 첫 대회였다.

대회 개막 전부터 참가국 확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이어졌지만, 막상 막이 오르자 예상 밖의 돌풍과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반면 정치적 갈등과 인종차별, 상업화 논란도 끊이지 않으며 늘어난 경기 수만큼이나 그라운드 안팎에서 다양한 이슈를 남겼다.

우승 경쟁 못지않게 뜨거웠던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주요 장면들을 되짚어봤다.

카보베르데 선수단 / 사진=GettyImages 제공
이번 대회의 가장 큰 변화는 단연 48개국 체제였다. 참가국 확대와 함께 토너먼트 경기 수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국가가 월드컵 무대를 밟을 기회를 얻었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경기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확대된 출전권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 중심에는 이번 대회 최고의 돌풍을 일으킨 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와 40세 골키퍼 보지냐가 있었다.

카보베르데가 써 내려간 기적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인구 약 52만 명의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는 국토 면적도 한국의 약 2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월드컵 개막 전까지만 해도 카보베르데는 축구 팬들에게 낯선 이름이었다. 카보베르데는 출전국이 48개국으로 확대되고 32강 토너먼트가 신설된 이번 대회를 통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스페인, 우루과이,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조별리그 H조에 편성되며 사실상 '승점 자판기'로 평가받았다.

보지냐 / 사진=GettyImages 제공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카보베르데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으며 이번 대회 최고의 이변을 연출했다. 우승 후보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둔 데 이어 우루과이와도 2-2로 비겼고, 사우디아라비아와도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H조 2위(3무·승점 3)로 32강에 진출에 성공했다.

32강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에 패하며 여정을 마무리했지만 연장전까지 승부를 끌고 가는 저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특히 스페인전에서 유효슈팅 7개를 모두 막아낸 보지냐는 단숨에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40세라는 나이가 무색한 선방쇼와 투혼은 승패를 넘어 스포츠가 선사하는 감동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대회 전 5만 명 수준이던 그의 SNS 팔로워 수는 현재 3000만 명을 육박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를 맞이한 한국 대표팀 / 사진=GettyImages 제공
이번 대회를 상징하는 또 다른 변화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물 보충 휴식)다.

FIFA는 선수 보호를 이유로 기온이나 기상 조건과 관계없이 모든 경기에서 전·후반 각각 22분 무렵 3분간의 물 보충 휴식을 의무화했다.

이 시간은 선수들의 체력 회복이라는 본래의 목적 외에 감독들의 작전 타임으로도 활용됐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직접 전술을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실제로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이후 경기 흐름이 바뀌는 사례가 잇따랐고 새로운 전술 변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논란도 적지 않았다. 중계 방송사들은 이 시간을 중간 광고 시간으로 활용하며 막대한 광고 수익을 확보했다. 일부 중계에서는 광고가 길어지면서 경기 재개 장면 일부를 놓치는 일까지 발생해 선수 보호보다 상업성이 우선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BBC에 따르면 미국 월드컵 중계 방송사인 폭스스포츠의 월드컵 30초 광고 단가는 평균 20만~3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 대표팀 경기나 토너먼트 기간에는 75만 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입국 거부를 당한 뒤 소말리아로 돌아간 아르탄 심판 / 사진=GettyImages 제공
정치적 갈등 역시 그라운드 안팎을 뒤흔들었다.

이번 대회는 개막 전부터 미국의 입국 정책으로 삐걱거렸다. 소말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심판에 선발된 오마르 아르탄은 유효한 비자를 소지했음에도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에 의해 마이애미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결국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

아르탄은 2018년부터 FIFA 심판으로 활동했고, 지난해에는 아프리카축구연맹(CAF) 올해의 심판으로 선정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결국 미국 입국이 허가되지 않으면서 CBP의 요구에 따라 이스탄불행 항공편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란 대표팀도 대회 내내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긴장이 이어지면서 대표팀 운영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당초 이란은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전쟁 발발 이후 멕시코 국경 도시 티후아나로 거점을 옮겨야 했다. 여기에 대표팀 핵심 스태프들의 미국 입국 비자 발급이 거부되고, 이란 팬들에게 배정된 경기 티켓이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등 각종 문제가 잇따르며 논란이 커졌다.

조별리그 G조에 속한 이란은 3경기를 모두 미국에서 치렀다. 미국 정부는 이란 선수단에 경기마다 24시간 동안만 입국을 허용했고, 선수단은 멕시코에 머물며 경기 일정에 맞춰 미국을 오가는 강행군을 이어가야 했다. 이후 이집트와의 조별리그 3차전을 앞두고서야 경기 이틀 전 입국이 가능하도록 규제가 일부 완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인판티노 회장 / 사진=GettyImages 제공
아르헨티나도 정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잉글랜드와의 준결승에서 2-1로 승리한 뒤 리산드로 마르티네스와 자오바니 로셀소가 '말비나스(포클랜드 제도)는 아르헨티나의 땅'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외교적 파장을 일으켰다.

말비나스는 영국이 실효 지배 중인 포클랜드 제도를 아르헨티나가 부르는 명칭이다. 양국은 1982년 영유권을 둘러싸고 이른바 '포클랜드 전쟁'을 치른 바 있으며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행동은 FIFA가 강조해 온 정치적 중립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정치 논란과 맞물린 가장 큰 사건은 미국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의 징계 유예였다. 발로건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32강전에서 거친 반칙으로 퇴장당했다. 일반적으로 레드카드를 받은 선수는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없지만 FIFA는 이례적으로 징계 집행을 1년 유예하면서 그가 벨기에와의 16강전에 출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잔니 인판티노 FIFA회장에게 직접 연락해 징계 철회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FIFA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둘러싼 비판이 거세졌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SNS를 통해 "옳은 일을 해 거대한 불의를 바로잡은 FIFA에 감사하다"고 밝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음바페 / 사진=GettyImages 제공
인종차별 문제는 이번 대회에서도 여전했다. 선수도 팬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프랑스의 간판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는 파라과이와의 16강전 이후 파라과이 진보급진당 소속 셀레스테 아마리야 상원의원으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

프랑스가 음바페의 페널티킥 득점을 앞세워 파라과이를 1-0으로 꺾은 뒤 아마리야 의원은 SNS를 통해 음바페를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프랑스인 행세를 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식민지 출신 카메룬인"이라며 “글쓰기도 배우지 못한 야만인" 등의 수위 높은 표현을 사용했다. 카메룬 출신 아버지를 둔 음바페의 피부색과 혈통을 겨냥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이었다.

이에 프랑스축구협회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음바페 역시 공개적으로 맞서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관중석에서도 인종차별 논란은 이어졌다. 한국과 체코의 조별리그 1차전 당시 한국인 유명 유튜버 '이노냥'이 공개한 영상이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해당 영상에는 한 멕시코 남성이 카메라를 향해 양손으로 눈을 찢는 동작을 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른바 '눈 찢기' 제스처는 동양인을 비하하는 대표적인 인종차별 행위로 알려져 있다. 영상이 확산되며 국제적인 공분이 일었고, 해당 남성은 신원이 알려진 뒤 공개 사과하고 직책에서 물러났다.


[스포츠투데이 신서영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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