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에 시한부까지…연애 프로그램, '사랑'에 새로운 색 입히다 [ST취재기획]

입력2026년 08월 11일(화) 09:00 최종수정2026년 08월 10일(월) 15:32
누난 내게 여자야2, 내 남은 연애 포스터 / 사진=KBS2, SBS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또 연애 예능이야?'라는 반응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수많은 짝짓기 프로그램이 경쟁하듯 등장하면서 출연자들의 썸과 갈등, 최종 선택만으로는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기 어려워졌다.

이제 연애 프로그램(연프)의 경쟁력은 누가 출연하느냐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어떤 규칙을 적용하며,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느냐가 색깔을 결정한다. 포화된 연프 시장에서 방송가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재해석하기 시작한 이유다.

큰 틀은 그대로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인기 IP를 연프로 확장하는가 하면, 연상연하·돌싱·모태솔로 등 출연자들의 특징 자체를 콘셉트로 삼고, 파격적인 규칙을 더해 기존 프로그램과의 차별화를 꾀한다. 포화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송가의 변주가 본격화된 셈이다.

누난 내게 여자야2, 연애기숙학교 돌싱N모솔 포스터 / 사진=KBS2, SBS

◆ 평범한 연프는 가라…연상연하·돌싱과 모태솔로

최근 연프는 낯선 남녀를 한 공간에 모아 호감과 갈등, 선택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짝짓기 포맷에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출연자들의 관계나 배경에 뚜렷한 콘셉트를 부여하고, 기존 연프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조합과 규칙을 내세우며 차별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연상 여성과 연하 남성을 전면에 내세운 KBS2 '누난 내게 여자야'가 대표적인 사례다. '누난 내게 여자야'는 출연자들의 나이 차이를 자극적인 소재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숫자를 넘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아 시청자들의 공감과 응원을 이끌어냈다.

지난달 막을 내린 시즌2에서는 1살 차이 이진영·유진우, 11살 차이 유주희·이윤소, 6살 차이 박지혜·김정원 등 세 커플이 최종적으로 연을 맺었다. 특히 세 쌍 모두 방송 후에도 실제 연인으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더욱 높였다.

출연자의 이력 자체를 차별화 포인트로 삼은 프로그램도 있다. MBC every1·E채널 '연애기숙학교 돌싱N모솔'(이하 '돌싱N모솔')이다. '돌싱N모솔'은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가진 남녀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남성들은 3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의 나이까지 이성 교제 경험이 없는 '모태솔로'였다. 반면 여성들은 결혼과 이혼을 겪은 '돌싱'들로 구성됐으며, 일부는 자녀를 둔 경우도 존재했다. 연애를 시작해본 적 없는 남성과 결혼과 이별을 거쳐온 여성이 만난다는 극명한 대비가 기존 연애 예능과 다른 관전 포인트를 형성했다.

초반 성적만 놓고 보면 눈에 띄는 출발은 아니었다. '돌싱N모솔'은 닐슨코리아 기준 1회 0.3%로 시작해 5회 0.5%를 기록했다. 그러나 방송 수치와 별개로 온라인에서는 출연자들의 관계와 행동을 둘러싼 관심이 꾸준히 이어졌다. 방송사 공식 유튜브에 공개된 관련 클립 가운데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은 33만 회를 넘어섰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특정 장면과 출연자들의 관계가 회자되며 화제성을 만들어냈다.

프로그램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에 있었다. 연애에 서툰 모태솔로와 이미 결혼과 이혼을 경험한 돌싱이 만나면서 기존 연프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어색한 접근과 솔직한 감정 표현이 등장했다. 여기에 예상하기 어려운 출연자들의 행동과 관계 변화까지 더해지면서 완성된 러브라인보다는 '날것의 연애'를 지켜보는 재미가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었다.

이러한 관심은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률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최종회는 닐슨코리아 기준 수도권 2549 여성 코어 타깃 시청률 평균 1.4%, 최고 1.7%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수도권 남녀 30대 시청률 역시 1.5%로 동시간대 1위에 오르며 막판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최종적으로 '돌싱N모솔'에서는 수금지화와 두쫀쿠, 루키와 불나방, 조지와 순무 등 세 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특히 조지와 순무는 방송 이후에도 실제 연인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았다. 서로 다른 연애 경험을 가진 이들의 만남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이 실제 관계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지며 프로그램의 차별화된 색깔을 보여준 셈이다.

래퍼 여친 구함, 내 남은 연애 포스터 / 사진=Mnet Plus, SBS

◆ 기존 IP 확장에 파격 소재까지…더 강렬해진 테마

기존 프로그램의 IP를 활용해 공개 전부터 흥미를 유발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Mnet의 '래퍼 여친 구함 : KISS or DISS'(이하 '래퍼 여친 구함')다. 지난 7일 첫 선을 보인 '래퍼 여친 구함'은 Mnet의 대표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IP를 연애 리얼리티로 확장한 프로그램이다. '쇼미더머니12' 출신 Royal 44, 정준혁, 노윤하, 더블다운, 바이스벌사 등 래퍼들과 뮤즈(여성 출연자)가 만나 사랑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단순히 유명 래퍼들을 출연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쇼미더머니'의 경쟁 요소를 연프에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뮤즈가 데이트 과정에서 래퍼를 교체하거나 방출·추가할 수 있는 룰이 등장하면서 기존 연프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긴장감을 더했다. 래퍼들 역시 "쇼미더머니 같다" "달달한 연프를 생각하고 온 제가 잘못인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새로운 규칙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종 선택을 받은 래퍼에게 주어지는 '다이아몬드 목걸이' 역시 프로그램만의 차별화된 장치다. 연애 감정뿐 아니라 경쟁과 보상이라는 요소를 결합해 '쇼미더머니' 특유의 색깔을 프로그램에 녹여냈다.

'래퍼 여친 구함' 제작진은 스포츠투데이에 "'쇼미더머니12'를 통해 래퍼들을 향한 다양한 관심과 반응을 확인했고, 그 연장선에서 무대 밖 래퍼들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스핀오프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기존 '쇼미더머니'가 래퍼들의 음악적 경쟁과 무대를 통해 매력을 보여줬다면,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데이트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래퍼들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는 점이 차별화된 포인트"라고 짚었다.

SBS는 연애와 쉽게 결합하기 어려웠던 '시한부'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 3일 첫 방송된 '내 남은 연애'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거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투병 경험을 가진 2030 청춘들이 다시 삶과 사랑을 마주하는 과정을 담은 연애 리얼리티다.

죽음과 사랑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연프에 접목한 만큼 방송 전부터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공개 이후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국내에서는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순위 9위로 진입하며 첫 주부터 TOP 10에 이름을 올렸고, 일본·대만·홍콩 플랫폼과도 사전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며 관심을 입증했다. 특히 일본 ABEMA는 주간 이용자 약 3000만 명 규모의 현지 주요 OTT 플랫폼으로, 한국과 동시에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연애기숙학교 돌싱N모솔 / 사진=MBC every1 캡처

◆ 넘쳐나는 연프…'한 끗 차이'에 승부수

연프의 다변화는 역설적으로 시장의 포화 상태를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지상파부터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OTT까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유사한 프로그램이 쏟아졌으며, 비슷한 출연자 구성과 관계 설정, 데이트 방식에 피로감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늘고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등장할 때마다 '또 연프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연프가 오랫동안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연애라는 소재만으로 차별성을 갖기 어려워졌다. 여러 플랫폼에서 경쟁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유사한 콘텐츠가 많아졌고, 시장에 과다 공급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시청자에게 신선하게 다가가기 위해 연애란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그 위에 다른 테마를 얹는 방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있다"며 "익숙한 소재를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낯선 요소를 결합해 기존과 다른 느낌을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경쟁력은 '연애' 그 자체보다 이를 어떻게 변주하느냐에 달린 셈이다. 이미 수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출연자들의 썸과 갈등, 선택과 이별을 지켜본 시청자들에게는 단순한 관계 설정만으로 새로운 재미를 주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같은 연애라도 어떤 세계관과 규칙을 적용하고, 어떤 이야기를 더하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개성이 갈릴 수밖에 없다.

하 평론가는 "연프는 정해진 당위가 있는 장르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며 "결국 창의적인 내용을 통해 차별화하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프로그램을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설정을 내세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시청자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연프가 안고 있는 또 다른 과제이기도 하다. 차별화를 위해 자극적인 관계 설정이나 극단적인 상황을 앞세울 경우 단기간 화제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피로감을 오히려 키울 가능성도 있다. 결국 '얼마나 다르게 만들 것인가'뿐 아니라 '어떻게 새로움을 설득할 것인가'가 중요해진 것이다.

결국 포화된 연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가 출연하느냐를 넘어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 비슷한 포맷의 반복 속에서 차별화에 나선 방송가의 시도가 일시적인 화제성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연프의 문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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